[레포트 - 세계문명과 기독교Ⅰ] 서평 : 존재하시는 하나님(프란시스 쉐퍼)
류명운
·2015. 5. 27. 02:20
[레포트 - 세계문명과 기독교Ⅰ] 서평 : 존재하시는 하나님(프란시스 쉐퍼)
* 세계문명과 기독교 Ⅰ 수업 중 중간고사 대체 레포트로 작성된 "존재하시는 하나님(프란시스 쉐퍼)" 에 대한 서평 자료 입니다.
존재하시는 하나님(프란시스 쉐퍼)를 읽고-명우니닷컴.hwp
서론(저자소개)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1912.1.30-1984.5.15
복음주의 선교사, 철학가, 저자, 강연가로서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의 루터교 가정에서 출생했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페이스 신학교 등에서 수학했다. 1948년 스위스로 건너가 각국에서 오는 젊은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쏟던 중 1955년에 국제적 연구와 사역을 위한 공동체 라브리(L"abri)를 설립하였다. 이곳을 통해 많은 토의와 연구,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돌아오는 일이 이루어졌으며, 전 세계로 사역이 확장되었다. 그는 오늘날 사회 병리 현상의 주원인이 ‘진리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사상에 있다고 보고, 20여권에 걸친 방대한 저서를 통해 상대적 진리관이 사회 각 분야에 초래된 결과들을 기술하고, 우리 세계의 유일한 해결책은 성경적 절대 기준으로 돌아가는 길뿐이라고 주장한다.
본론(내용요약)
제1부 20세기 후반의 지적·문화적 동향
현대인은 '절망선' 아래로 내려가 있어서 여기서는 '영성'이란 말 자체도 기독교 영성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 현대 신비주의가 이런 부류이다. 고전적 반정립의 방법론에서 벗어나 진리 개념을 바꿈으로서 현대인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절대 기준과 반정립이 없어진 사고 형식을 따라 실용적 상대주의에 도달했다.
제2부 신신학(新新學)과 지적 풍토의 관계
현대의 신비주의는 '절망을 넘어선 절망'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절망에 빠진 현대인에게 더욱 큰 절망을 주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분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세상을 자연과 은총로 나누고 이의 단절로 보는 것이다. 이렇듯, 신앙과 합리적인 것이 나뉘었기에 인간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제3부 역사적 기독교와 신신학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 시대가 '종교적 진리'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역사와 과학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언어로 표현된 형식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이 명제를 통하여 인간과 의사소통하신다는 사실이 있을 수 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전체 지식의 영역에는 통일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제4부 역사적 기독교를 20세기 사조에 말하는 길
신앙의 참된 기초는 신앙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사역에 있다.
제5부 예비복음전도는 온건한 선택이 아니다
전도를 하게 되면 단순히 선포에 그치는 식이 아니라 실제로 그를 사랑하면서 인격적으로 빠져나올 길을 제시해야 한다. 실제 많은 전도에서 단순히 믿으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신앙을 설명함으로서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6부 20세기 풍조 속에서의 개인적 및 공동체적 삶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우리는 하나님 자신과의 인격적 관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되돌아 보고 확인해야 한다.
결론(서평하기)
앞서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본서는 프란시스 쉐퍼 박사가 1968년 쓴 가장 초기의 저술이자 그의 사상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는 20세기 철학, 미술, 문화가 이미 절망의 경계선을 넘어 반정립이 아닌 변증적 사고로 치닫고 있으며 이제 합리적 세계가 아닌 비합리적 도피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시대에 구원의 복음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제로 하는 ‘예비복음’을 미리 오랫동안 설명할 필요가 있으며, 선포뿐 아니라 그 실제 삶을 보여주는 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하여 선포를 이해하도록 힘 있게 하여야 함을 말한다.
‘진리’의 반대가 ‘비진리’가 아닌 것이 되어버린 포스트모더니즘의 틈바구니 속에서 모든 것이 모호한 이 시대에 우리는 얼마나 깨어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는 매일 기도드리고, 채플을 통해 예배를 드리면서도 정작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있을 뿐더러, 그것을 다시 잡으려는 노력조차(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하고)하지 않고 있다. 예로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연구하는 철학적인 방식에 의해서 하나님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들의 노력이 어떤 면에서는 신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얻어지는 해답이 신앙을 올바로 세워주지는 못한다. 때로는 순수하지 못한 결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노력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노력들이 여러 다양한 계층에서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철학 뿐만이 아니라 예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런 노력과 무관하게, 아니 영향을 받지 않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무의미하다. 인간이 찾아내는 하나님이 아니라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신다. 바로 거기로부터 인간의 학문으로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에겐 모두 자기 자리가 있다고 한다. 남의 자리에 있을 때는 뭔가 어색하고 낯설고 불안한게 정상이다. 본서는 존재하시는 그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 그와 더불어 그 분이 창조하신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 아니 인간이 있어야 하는 자리, 진짜 인간다움을 찾아가게 돕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게된다. 특히 책속에서 소개한 구절을 읽으며 "인간적"이란 말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내 안에 창조하신 하나님의 품성이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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